-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청교도 신학자요 목사이며 독실한 칼빈주의자였다.
그는 18세기 미국의 가장 중요한 목사로, 그리고 미국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제1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적인 인물이었다.
이 설교는 1731년 7월 8일 보슨톤에서 행해졌으며, 이 설교를 들은 보슨톤의 몇몇 목사들과 그 외 사람들의 요망에 따라 출판되었다. 이것은 에드워즈
목사가 출판한 첫 번째 설교문이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1:29,30,31)
바울 사도로부터 이 서신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지혜가
크게 인정받던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도는 고린도전서1:22에서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는 여러
세대에 걸쳐 세상에서 철학과 학문으로 가장 유명했던 도시인 아테네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음으로 사람의 지혜를 무너뜨리셨고 헛되게 하셨는지를 그들에게 말합니다. 학식 있는 헬라인들과 그 철학자들은 그들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신적인 일들에 관한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무익하게 되었을 때에,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복음으로써 자신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셨습니다(27-28절). 그리고 그 사도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를 그들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 구속에 관한 일들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목표로 삼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은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에 의하면, 자랑하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31절).
2. 이 목적이 구속사역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들이 그 구속사역 가운데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의존을 함으로써 성취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사람들이 얻게 되는 모든 유익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집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타락하고 구속함
받은 피조물의 모든 유익은 이 네 가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들보다 더 잘 분배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 네 가지 모두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가
아니면 그것들 중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
그 분 안에 모든 합당한 좋은 것들과 참된 지식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지혜는 헬라인들이
사모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세상의 참 빛이십니다; 참된
지혜가 마음에 전해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의로움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고, 죄를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께 호의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분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참된 탁월함을 얻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전가된 의뿐만 아니라 선천적인 의가 되십니다.
우리가 구속함을 얻고, 혹은 실제적으로 비참함에서 해방되어 모든 행복과 영광을 수여
받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둘째, 우리가 우리의 모든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 등이 되셨습니다.
셋째,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 분 안에서 좋은 것들을 얻고,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 분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고전1:29-31)에는 우리의 모든 유익을 위하여 삼위일체의 각 위격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의존해야 하는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분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신 성부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얻게 하시고, 또 그 분과 연합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원리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할 때, 하나님은 구속사역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신다.
여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논증하고자 합니다: 첫째, 구속 받은 자들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둘째, 이로써 하나님은 구속사역 가운데서 높임과 영광을 받으신다.
I.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속의 본질과 계획은 구속 받은 자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어떤 존재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존재를 의존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존하는 방법은 이러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모든 좋은 것들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받는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이며 원천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받는 좋은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좋은 것들을 주고 운반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구속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통하여 좋은 것들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지고 운반되는 좋은 것들 바로 그 자체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것들은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이 모든 측면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그들의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첫째,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그들의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들을 만드신 위대한 창조주십니다. 그 분은 모든 좋은 것들의
제일 원인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분은 유일하게 합당한 원인이십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구속자가 계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자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 분의 위격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우리와
관계를 맺는 중보자로서의 그의 직무에 있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셨으며, 또 그
분에게 사역을 맡기셔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자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구원자를 받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속자를 주시고, 또 구속자에 의해 구속될 것도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시고, 우리가 그에게 인도함 받아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 분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신 모든 혜택을 실제로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품에 안길 때에 그들은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죄의 지배로부터 건져주시고,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주시며, 우리의 추한 모습을 변화시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모든 참된 탁월함과 지혜와 거룩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즉, 이러한 일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하나님에 의하여 보냄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성령 자신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작용과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신적인 일들 그리고 거룩한 성품과 온갖 은혜가 주어지고 유지됩니다.
그리고 비록 사람의 영혼에 은혜가 전달되는데 여러 가지
수단들이 사용되지만, 우리가 이 은혜의 수단들을 얻게 되는 것 또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수단들을
효과적으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게 된 것도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규례(ordinances)가 있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이 규례들의 효력은 성령의 직접적인 영향력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으며, 그들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1.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순전히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는 받은 것의 탁월함에
비례하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선물은 무한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으신 분, 무한한 영광을 가지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독생자는 하나님과 무한히 가깝고 친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그 독생자 안에서 받은 혜택에 비례하여 가치가 있습니다. 그 혜택은 이중적으로 무한합니다: 즉,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무한하고 영원한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또한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선물을 주신 은혜는 그 선물을 받은 우리의 무가치함에
비례하여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물을 받는 대신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 무한한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은혜는 선물을 주시는 방법에 따라서 가치가 있으며, 또는 우리가 그 선물을 받는 방법이나 수단의 수치스러움과 대가에 비례하여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로 하여금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와 같은 본성으로 성육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셔서 낮고 고통 받는 상태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여서 우리 영혼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매우 자유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주셔야 할 그 어떤 의무도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거부하신 것처럼 타락한 인간을 거부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선물을 받을만한 그 어떤 일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물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가 회개를 하기도 전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관심을 끌만한 그 어떤 탁월함도 찾지 못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상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혜택이 이런 저런 특별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고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그 은혜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돌려야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시고,
그가 자비를 베푸시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사람들은 이제 타락하기 전보다도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타락 이전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하신 뜻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온전한 복종의 보상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보상을 약속하시거나 주실 의무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광을 주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옥과 영원한 진노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첫 언약
아래에서, 우리는 의(義)의 보상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그 의(義)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은혜,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죄책감과 무한한 죄의 형벌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첫 언약 아래에서보다 더 더욱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같이,
더 크고 더 자유롭고 더 놀라운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더 더욱 하나님의 임의적이고 주권적인 선하신 뜻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에서는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을 의존하였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의(義)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지금처럼 거룩함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에
의해 주어지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거룩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을 거룩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성적인 피조물을 거룩하지 않게 만드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을 손상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타락한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순전하고 임의적인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그의 완전하심에 그 어떤 손상도 없이, 타락한 피조물에게 영원히 거룩함을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많이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분명하게 의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무력함이 우리가 죄와
비참한 상태에 떨어지기 이전보다 타락하고 파멸한 상태에서 훨씬 더 명백하기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더욱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먼저 죄가 있고 완전히 타락한 상태에서 나중에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으로 인한 결과를 느끼고 있고, 거룩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도 더욱 분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변함없이
거룩하고 또 언제나 거룩하다면, 사람에게 인간본성과 불가분의 관계로 반드시 있어야 할 거룩함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받기 위해 그의 자유로운 은혜에
더욱 분명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진노의 대상이었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호의를 덧입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비참한 상태에 있다가 나중에 행복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피조물의 탁월함 속에 공로가 될만한 그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실제로 공로가 될만한 그 어떤 종류의 탁월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어떤 참된 탁월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한히 가증스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또 완전히 더럽혀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더욱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먼저 벌거벗었고 좋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가 나중에 모든 좋은 것으로 부유하게 되었기 대문입니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습니다.
사람의 구속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종종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사역으로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은 죄인을 그의 낮은 상태, 죄와 비참함의 깊은 데서 건져내어 거룩함과
행복과 같은 높은 상태로 이끄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9).
우리는 구속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회심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새로운 본성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사역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타락한 피조물은 진정한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고, 다시 창조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4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2:12-13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창조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도 더욱 영광스러운 사역입니다. 그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는 더욱 위대하고 더욱 탁월합니다. 회심의 사역으로 이루어진 거룩하고 행복한 존재와 영적인 삶은 단순한
존재와 삶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 곧 죄 가운데서 죽었고, 본성이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깊은 비참함 가운데 있었던 것은 새롭게 도달한 상태로부터 단순한 죽음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상태로 보존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1:5)
은혜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듯이,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에 의해 유지됩니다. 그것은 공기 중의 빛이 처음 동틀 때나 해가 떠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모든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마음에 은혜를 베푸시는 사역에 있어서,
죄와 부패를 제거하심에 있어서, 거룩한 원리들을 증가시키심에 있어서,
선행으로 열매를 맺게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사람은 완전함에
이르는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 그 영혼이 온전히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함에 있어서,
그 영혼을 만족케 하는 기쁨과 행복으로 채움에 있어서, 그 몸이 소생하여 복되고
완전해진 영혼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기관으로서 완전한 상태에 이름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가장 영광스러운 결과들이며, 피조물과 관련된 하나님의 일련의 행위들 속에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사람은 처음 창조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더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며, 더 많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사람을 거룩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데 있어서 많은 반대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타락하고 죄의 속박 아래 있는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은 이전에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반대하는 세력이 없었던 사람에게 거룩함을 수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광스러운 능력의 결과입니다. 한 영혼을 마귀의 손과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일은 그 어떤 속박이나 반대가 없던 곳에서 거룩함을 수여하는
일보다 더 큰 영광스러운 능력의 사역입니다. 누가복음 11:21-22의 말씀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눅11:21-22)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 안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던 처음 상태에서 사람을 타락하지 않게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의 저항하는 마음 속에 많은 죄가 남아있는 때에 사람의 영혼을 은혜와 거룩함의 상태로
유지하여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은 더 큰 능력의 영광스러운 사역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구속 받은 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둘째, 구속 받은 자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통해서 받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주요 원천일 뿐만 아니라 중보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곧 지혜와 죄 용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 하나님의 호의 가운데 수용됨, 은혜와 거룩함, 진정한
위로와 행복, 영생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중보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중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 중보자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가 모든 좋은 것들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보자를 주실 뿐만 아니라, 중보자의 중보를 받아주시고 중보자께서
값을 지불하신 것들을 그의 능력과 은혜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그 중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받는 복들은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 값의 지불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값을 지불한 복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그 값의 지불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그 지불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지불자이시면서 그 값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에 대한 값으로, 자신을 드리심으로써 이 복들에 대해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영생에 대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7:27)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9:26)
실로 희생제물로 바쳐진 것은 그의 인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신성도 가지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희생제물은 무한한 값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을 통해서 받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처음 창조된
상태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관계에서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義)을 통해서 영생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사람이 부분적으로 자기 내면에 있는 것에 의존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좋은 것들을 얻는 원천뿐만
아니라 그 통로에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때 사람이 의존하였던 사람의 의가 참으로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의 것이었으며 그에게 선천적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의존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의(義)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구원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23:6에 보면,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는 이름으로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의는 그리스도의 의,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이처럼 구속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8:6)
셋째, 구속 받은 자들이 가진 온갖 좋은 것들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좋은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받지만,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좋은 것 그 자체이십니다. 구속 받은 자들이 받는 좋은 것들은 객관적이기도 하고 선천적이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좋은
것들이라 함은 구속 받은 자들이 그것들을 소유하고 즐기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외부적인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또 선천적으로 좋은 것들은 그 영혼 안에 있는 탁월함이나 즐거움입니다. 구속 받은 자들의 그
두 가지 종류의 좋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모든 좋은 것이 되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1. 구속 받은 자들이 가진 온갖
객관적인 좋은 것들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그들이 구속으로 인하여 소유하고 즐거워하게
된 위대한 선(善)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선(善)이시며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신 모든 좋은 것들의 총합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유업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영혼의 상속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富)와 보물이시며, 그들의 양식, 그들의 생명, 그들의 거처, 그들의 장식과 왕관,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명예와 영광이십니다. 성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구속 받은 자들은 죽을 때, 그리고 세상 끝날 부활할
때에 위대한 선(善)이신 하나님을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천상의 예루살렘의 빛이시며, “생명수의 강”, 그리고 “하나님의 낙원 중앙에 자라는 생명나무”이십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아름다우심은 영원히 성도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의 영원한 잔치가 될 것입니다. 구속 받은 자들은 실로 다른 것들을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을 즐거워하고 서로를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사들을 즐거워하는 것이나 서로를 즐거워하는 것 혹은 그들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그들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2. 구속 받은 자들이 가진 온갖
선천적인 좋은 것들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선천적인 좋은 것들이란 이중적입니다; 그것은 탁월함이기도 하면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구속 받은 자들이 가진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하나님이 그 기원이실
뿐만 아니라 그 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종의 하나님에 대한 참여로 영적인 탁월함과 기쁨을 가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탁월하심과의 친교로 탁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름다움,
곧 그의 아름다운 형상을 그들의 영혼에 나누어 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에 참여한 자들이 됩니다. 베드로후서1:4의 말씀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고 히브리서 12:10의 말씀을 보면, 달과 행성들이
태양빛으로 밝게 빛나는 것처럼,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및 기쁨과의 친교로 아름답고 복되게 됩니다.
성도들은 일종의 하나님의 유출에 의해 그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서 구속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함께
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은사로 그들의 영적 탁월함과
복됨 모두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들은 성령에 의해서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원리이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내주자가
되시는 성령은 영혼의 생명원리이십니다. 영혼 안에서, 영혼에 대하여,
영혼과 함께 행동하시는 그는 생수의 샘으로서, 자신의 노력과 확산으로,
진정한 거룩함과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요한복음4:14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이 말씀을 요한복음7:38-39의 말씀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값을 지불하신 것들의 총합은 그
생수의 샘인데, 이전에도 언급된 적이 있었고,
나중에는 생수의 강으로 언급됩니다. 구속 받은 자들이 천국에서 받게 될 복들의 총합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입니다. 요한계시록22:1은 의심할 여지없이 요한복음7:38-39에 설명된 생수의 강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의 강”이라 불립니다.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좋은 것들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과 교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충만함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단으로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그의 충만함 가운데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유업으로 받을 것들의 총합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성령은 적은 분량으로서 보증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1:22)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후5:5)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얻었나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성령과 온갖 좋은 것들은 성경에서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영혼에 전달해
주는 것에는 온갖 좋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13)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획득한 복들의 총합이며, 복음이 약속하는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3:13-14)
하나님의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눅24: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합니다(엡1:13). 이 약속의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으로 받으셔서, 구속사역이 끝나자 마자 그가 구속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2:33)
그렇기 때문에 구속 받은 자들의 모든 거룩함과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통하심과
내주하심 그리고 사역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 받은 자들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들의 거룩함과 행복은 현세와 내세에서 성령의 열매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속자를 주셨고, 우리가 가진 온갖 좋은 것들은
그 구속자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곧 구속자시며 그 지불한 값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값을 지불하고 산 온갖 좋은 것들 바로 그것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그 분으로 말미암았고,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11:36)
여기에서 헬라어로 그 분에게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그 분
안에 있다는 표현과 같습니다(고전8:6).
II. 하나님은 구속사역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구속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 그처럼 크고 보편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충만하심을 주목하고 인식할 더 많은 기회와 의무가 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그는 완전함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그 만큼 그 완전하심에 주목할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의존할수록,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주목할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더 많이 더 직접적으로 의존할수록,
그 거룩하심을 주목하고 인식할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더 많이 더 절대적으로 의존할수록, 우리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하고 소유할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우리는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것에 확실히 더 많은
주시와 주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에 대한 이런 종류의 관심, 즉 의존은 특별히 주의와 주시를 요구하고 강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의존하지
않는 것들은 쉽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 많은 사항들에 있어서,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눈을 어디로 돌리던 간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직접적으로 우리 눈에 포착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충만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주목할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무한한 선(善)과 온갖 좋은 것들의 원천으로서 하나님을 묵상할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의 의존이 큰 것만큼, 피조물 자신의 공허함은 더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공허함이 크면 클수록,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존재의 충만함도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그 분의 능력과 은혜의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그
분을 통해 받는다는 것은 그 분의 공로와 가치의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그 분 안에서
가진다는 것은 그 분의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행복의 충만함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구속 받은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의존이 지대한 까닭에, 그처럼 많은 기회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충만하심을 묵상할
의무도 많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직접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의존하는 하나님의 충만하심과 영광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감사를 모르는 것일까요!
2. 이로써 그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상대적으로 이해되는지, 또 피조물의 영광과 비교되는지 증명됩니다.
이처럼 피조물이 전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통하여 피조물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모든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무한히 우리 위에 계신 분이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힘, 지혜, 거룩하심은 우리의 그것들보다 무한히
더 큽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하나님을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이해하든지 간에,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차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교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피조물이 어떤 점에서든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다면, 혹은 자신을 높여
하나님과 경쟁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그가 하나님께 속한 위대한 영예와 심원한 존경의 질적인 차이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존재가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만큼 하나님을 덜 높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것은 분명히 사물들의 성향이 구속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마음이 게시된 것으로 인정한다면), 구속함이란 하나님은 충만하시고 사람은 공허함이 드러나는 것이며,
하나님은 모든 것이고 사람은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른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포된 계획입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취급 받는 그의 영광을 끌어올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광은 그만큼 더 적어집니다.
3. 이렇게 피조물은 전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명령을 받은 존재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영혼을 소유하시고 우리의
모든 존경을 받는 대상이 되실 것이 예견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또 부분적으로
다른 것을 의존한다면, 사람의 존경은 그가 의존하는 다른 것들로 분산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만
하나님을 의존하고 다른 것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어떤 존재를 의존한다면, 혹은 하나님으로부터는 좋은
것들만 받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통해서는 다른 것들을 받고 또 다른 존재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받는다면, 우리 마음은 좋은 것 자체와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것 사이에서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온갖 좋은 것들의 원천이시며,
통로이시고, 좋은 것 그 자체이시고, 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그 분을 통하여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경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 성향이
하나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 중심이신 하나님 안에 연합되어 있습니다.
적용
I. 우리는 구속사역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으로 인하여 빠져들게 된 공허함과 비참함, 낮음, 상실 등 파괴된 상태를 그의 영광을 촉진시키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이 경우에도, 사람은 더욱 더 보편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가 타락하여 빠지게 된 죄와 고통의 비참한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그를 탁월함과 영예 그리고 영광과
행복의 높은 곳에 이르게 하시기를 무척 기뻐하셨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그 어떤 점에 있어서도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모든 영광은 명백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모든
것이 단순하게 그리고 가장 절대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이 사역 가운데서 동등하게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으로 구속사역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구속사역에 있어서 스스로 계시는 자이시며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는 하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모든 것과 유일한 것이 되심은 합당합니다.
II.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라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존에 대해 반대하는 교리나 신학체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며 우리의 구원계획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피조물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며, 우리의 구속에 관계된 그 어떤
것으로 사람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위치로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구속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처럼 절대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부인합니다.
그들은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속자를 영접하는 것과 그의 선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구속자 안에 있는 혜택을 얻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그처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독생자를 주시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를 회심시키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요구할 자격을 주시는 성령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은혜의 수단을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수단들의 혜택과 결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거룩함을 얻고 훈련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분적으로 의존하지만,
하나님의 임의적이고 주권적인 은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호의로 영접하심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로 없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그 어떤 탁월함에 끌리거나 감동받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생명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를 부분적으로 의존하지만,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의(義)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와 같이 우리 자신의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분을 통하여, 그 분 안에서
얻게 된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신학체계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복음의 계획과 취지에 모순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광채와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III. 그러므로 우리는 왜 믿음에
의해서 우리가 이 구속에 관심을 갖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본질 속에는 구속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대한 분별 있는 인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속의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는 분별과 인식이 요구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수단들을 통하여 구속사역에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구속사역의 대상이 되어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최소한 이런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은 타당합니다.
믿음은 구속사역에 있어서 실제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영혼은 구원의 모든 내용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그것을 깨닫고 행동합니다.
믿음은 사람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입니다; 믿음은 구속의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 필수적이며, 자신이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음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겸손은
참된 믿음의 주요한 요인입니다: 참으로 구속함을 받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10:15)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은 믿음을 가진 영혼의
기쁨입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115:1)
IV.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며,
그 모든 구속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도록 합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크게 의존하고 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증진시키도록 노력합시다. 눈을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시키고 자신을 의존하고 자신을 의를 추구하는 성향을 극복하도록 노력합시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지나치게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능력이나 선함을 의존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람은 마치 하나님과 그의 성령과는 관계 없는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며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우리에게 믿고 의존함으로써 그리고 찬양함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님을 자랑하게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회심하길 원하고, 거룩하길 원하고,
그의 마음에 참된 탁월함과 영적 아름다움이 있길 원합니까? 그의 죄가 용서 받고,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예와 복을 받고, 영생의 상속자가 되길 원합니까? 그로 하여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십시오;
오직 누가 그를 이 세상의 가장 악한 사람들과 지옥에서 가장 비참하게 저주받은 사람들로부터 돌아서게 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많은 위로와 영생에 대한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소망으로
자신을 높이게 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더 자신을 낮추게 하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무가치함을
돌아보게 하여, 오직 하나님을 높이게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거룩함에 있어서 탁월하고 또 많은 선행을 행하고
있다면, 그 어떤 영광도 자신에게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돌리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엡2:10).
Online at http://www.jonathan-edwards.org/Dependen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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