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호 목사 (샤론교회, 에스라하우스 원장)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같이 공부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그것은 역사와 과학이다. 우리가 온전한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하면 성경과 역사와
과학을 부단히 공부해야만 한다.
성경의 내용들
성경에는 크게 보아서 다음 일곱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성경에는
역사(歷史)가 있다. 성경의
진리는 역사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많은 역사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호수아, 사사기, 릇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 책들이 모두 역사서이다. 또한
성경에는 역사서 외에도, 창세기에 원역사가 있고, 히브리 족장사가 있고, 오경에는
출애굽의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상당한 부분이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안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옛 약속과 새 약속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척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정신을 차리고 거기에 어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 성경에는
명령(命令)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과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서”라고 부르는 책들,
이른 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의 책들은 주로
명령으로 되어 있다. 이 율법서에는 적극적으로 “하라”고 명령한 것이 248조, 그리고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 365조, 모두
합해서 613개의 명령이 있다.
이 명령들 가운데는 오늘날 우리와
관련이 없고 또 지킬 필요도 없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세상 종말까지 계속해서 지켜야 할 것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들을 찾아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넷째, 성경에는
다음에 예언(豫言)이 있다. 성경은 상당한 부분이 예언으로 되어
있다. 어떤
예언은 그것이 기록될 때는 예언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성취되어 역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는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도 많이 남아 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언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성경에는
지혜(智慧)가 있다. 성경을 잘 공부하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 보라. 거기에 지혜가 있다. 성경은
읽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들을 성경에 이미
다 기록해 놓으셨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된 지혜이다. 성경에서 지혜를 찾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달하게 되면 지혜가 생긴다. 성경에는 잘 사는 지혜, 돈 버는 지혜, 건강하게 되는 지혜 성공에 이르는 지혜 등 많은 지혜들이 있다.
여섯째, 성경에는
교훈(敎訓)이 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남긴 인생의
참 교훈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교훈은 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교훈이다. 성경에는 성공한 결과
얻게 된 교훈들뿐만 아니라, 끝 없는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들도 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성경에는
찬양(讚揚)이 있다. 성경에는 수많은 찬양이 나온다. 다윗을
비롯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많은 사람들의 찬양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성경에는 역사(歷史)와 약속(約束), 명령(命令), 예언(豫言), 지혜(智慧), 교훈(敎訓), 그리고 찬양(讚揚)이 있다. 이것들을
마음에 잘 새기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위기의 중요성
자, 이제
구약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이해할 없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신약은 조금 알겠는데 구약은 너무 어려 어려워요”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저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신약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성경은 구약을 알아야 신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내용만을 놓고 보면, 구약이
아니라 신약이
훨씬 더 어렵다. 신약은 수준이 아니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약은
그저 읽기만 하면 다 이해할만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못 읽어서 어렵고, 안 읽어서 어렵고, 책이 두꺼워서 어려운 것일 뿐이다. 실제로
그 내용이 어려운 건 절대 아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옛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아담에게 주신 언약과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의 언약, 모세의
중재로 주어진 시내산 언약이 있다. 이 시내산 언약을 보통 “레위기”라고 한다. 계속해서,
이새의 줄기,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이란 다윗 언약,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였다가 역사 끝에 가서는 반드시 모아서 그 본토에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도 있다.
이렇게 구약에는 많은 언약과 약속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약”이란 것은 “레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레위기이다. 우리가 구약을 포괄적으로 말할 때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를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구약은 “레위기”이다.
우리가 “구약은 율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율법이 바로 레위기인 것이다.
레위기는 구약의 책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다.
창세기가 아니라 레위기가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머물렀던 기간이 약 일 년정도 되는데, 그 1년 동안에 레위기가 기록되었다. 레위기가 다 기록되고 회막이 완성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회막 봉헌식을 한 다음에 시내산을 떠나게 되었다.
레위기의 주제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살때, 그들은
400년간 완전히 애굽 사람처럼 살았다. 그들은 애굽 사람처럼 먹고, 애굽 사람처럼 입고,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 이후로는 애굽 땅에서 살던 식으로 살아서도 안 되었고, 또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 사람들처럼 살아서도 안
되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는 전혀 다르게, 오직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따라서 살아야만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따라서 다른 민족들과 다르게,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총 주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다(레위기11:45, 19:2,
20:26).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한다. 이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들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양이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죄를 씻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룩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죄를 씻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대인들 보다도 훨씬 더 거룩해야만 한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먹는 것도 다르고,
입는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르고, 부르는
노래도 다르고, 정치도 다르고, 농사짓는 법도 다르고,
장사하는 법도 다르고, 교육도 다르고, 다
달라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어떠한가? 전혀
다른 것이 없지 않는가? 귀신이 보아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세상사람들과 똑같다. 예수님을 믿어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세상사람보다도 더 타락해서 온갖 나쁜 짓들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귀신도 누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귀신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해도 세상사람과 똑같으니까 시험할 거리가 없을 정도이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레위기를 배우지 않았고,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레위기를 읽었다면 지금처럼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생활하진 않을
것이다. 성도들이 레위기를 읽지 않고 그저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 간다”고만 하니까 이렇게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레위기와 오경의 관계
레위기가 오경의 중심이고 구약의 핵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만 한다. 구약 중에서는 레위기가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이제 “애굽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하고 레위기가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이 레위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민수기”라는 책이다. 광야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레위기의 법을 따라 한 번 살아보자”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받은 것이 레위기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받은 것을 기록한 것이 민수기란 책이다.
그 다음, 훈련이
다 끝나고 나서, 이제 졸업식을 하게 된다. 그 졸업식의 설교를 모세가 하게 되는데, 모세는
레위기를 본문으로 해서 설교를 하였다. 모세가 레위기를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설교한 것이 “신명기”이다.
신명기는 모세가 40년
동안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과 헤어지기 전에 한 “고별설교”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고별설교는 설교의 원형이며 설교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는 어떤 책일까?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레위기”라는 언약을 맺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레위기”라는 언약을 맺기까지 어떤 목적, 어떤 정신,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진흙으로 벽돌이나 만들고 노예생활을 하던 중 그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강한 손과 편 팔로 바로의 압제에서 그들을 건져내셨다. 그리고 그들이 시내산 아래에 당도 했을 때 하나님은 산 위의 불 가운데 임재해
계셨고 이스라엘은 산 아래 있었는데,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왕래하면서 이 거룩한 “레위 언약”를 맺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이런 역사적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창세기는 무슨 책인가? 창세기는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그 분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언약을 깨뜨리자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화염검으로
막으신 분이시며, 타락한
인간들의 죄가 세상에 가득하게 되자 홍수로써 싹 쓸어 심판하셨던 분이시며, 그 노하시는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고 노아의
여덟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사 그 노아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하신 분이시며, 노아의 후손들이 또 다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반역하여
바벨탑을 쌓을 때에 그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분이시며, 그 흩어진 자 중에서 가장 신실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신 분이시며,
이삭에게 복 주시고 야곱을 지키신 분이시며, 요셉을 인도하셔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그를 따라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인도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이제 애굽에서 구원받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 “창세기”이다. 창세기는 레위 언약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한 책이다.
그러므로, 오경의 중심은 레위기인 것이다. 오경의 중심은 창세기도 아니고, 민수기도 아니고, 신명기도 아니고, 출애굽기도 아니다. 레위기가 오경의 중심이다. 이것을 모르면 아무리 구약성경을 읽어도 이해를 할 수 없게 된다.
레위기와 역사서
그리고 구약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오경이 끝나자마자 바로
여호수아, 사사기, 릇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렇게 역사서가 이어지는데, 역사서는
모두 12권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모세로부터
설명도 들었고, 또 광야에서 훈련도 해봤으니까, 이제 남은 일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모세의 사명이 아니라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데서부터 역사서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는 일반역사가
아니라 언약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켰는가? 지키지
않았는가?”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모르고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고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다. 어느 정도로 복을 받게 되는가 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고, 처 자식이 복을 받고, 네 원수가 한 길로 치러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고, 너는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을 것이고, 너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신명기28:1-14).
반면에,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복을 못 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셨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복에 관한 구절은 14절인데
반해서 저주에 관한 구절은 15절부터 68절까지 54구절이나 된다. 하나님은 복에 관한 말씀보다 저주에 관한 말씀을 4배나 더 길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무섭도록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해도 언약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음을 알게 된다. 다윗이나 솔로몬의 경우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불완전했지만 언약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때는 큰 복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만큼 언약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레위기와 시가서
언약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감사를 표현하게 되는데, 그래서 시가 나오고, 찬미가 나오고,
신령한 노래가 나오고, 지혜가 나오게 된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책들을 “시가서”라고 하는데, 시가서에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시가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으로써 복을 받은 사람들이 쓴 글들이라고 보면 된다.
레위기와 예언서
그런데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복을
못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곧 바로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내릴 저주를 다 준비해 놓으시고는 모든 것을 보류하신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람을 보내셔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왜 지키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언약을 지키고 복을 받으라”고 말하게 하신다. 이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칭찬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책망하러 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망을 들은 이스라엘은 또 기분이 나빠져서는 그들을 때려 죽여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예언자들을 보내신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내 종들을 보내어 너희를 책망한 것은
너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희 죄로 인하여 저주를 준비했지만 한 번 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내 종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을 또 때려 죽여버린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종들을 보내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으셔서 아들을 보내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아들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린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레위기의 언약을 지키지 않은 역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것은 별로 없고, 계속해서 아픔의 역사, 고통의 역사, 환란의 역사, 징벌의 역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게 되어야 한다. “아, 하나님의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나
강의 혹은 세미나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잘 되고, 잘
되고 있고, 잘 될 것”이라는 말로 가득 차 있다. 긍정의 힘으로 모든 것을 좋게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신데, 교회는 춤추며 복만 외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알지 못하고, 역사를 알지 못한 소치이다.
우리는 먼저 구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철저하게 공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열리는
신약의 새로운 차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구약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교회들은 지금 “좋으신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복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구절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구절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신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요한계시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만큼, “진노하시는 하나님”, “칼을 갈고 계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겸허하게 겸손하게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 번해서
안 되면 두 번, 두 번해서 안 되면 세 번, 그리고 열 번 스무 번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말이 통하고,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고, 하나님과 뜻이 통하려면, 먼저 마음 속에 성경 66권을 심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성경 66권을 제대로 마음에 심어 보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혼잡하게도 말고, 오직 말씀 그대로 우리 마음에 심어 보자.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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